[일기장] 뒷모습의 단상

 

Time to look at your back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시간

 

 

언젠가 형과 나란히 앉아 아버지의 나이 듦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가 한 인간으로 보이는 순간이 왔다는 것이 기특하기도, 아프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각자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를 다르게 기억하고 있던 형 덕분에,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당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태어나서 평생을 함께했지만 어쩌면 당신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그래서 처음으로 당신이 궁금했습니다.

 

출근하는 당신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한 자리에 고정된 채,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 멍하니 당신을 바라보면서. 어떤 성실함은 슬픔으로 다가온다는 어느 책의 문구가 잊히지 않았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눈과 시력이 있다고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 노력했기에, 조금이라도 당신을 알 수 있었다고 믿어보려 합니다. 뒷모습을 통해 당신을 알아가면서, 문득 다른 누군가의 뒷모습도 보고 싶어졌습니다. 뒷모습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사람도 조금은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며 느꼈던 감정을 짧은 글로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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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etter that cannot be sent

보내지 못할 편지

 

세비야에 도착하자마자 황금의 탑에 갔습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은 후, 짧은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자유시간 동안 아름다운 황금의 탑과 과달키비르 강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습니다. 사진으로 풍경을 담기 위해 주변을 살피면서, 우연히 휠체어를 타고 있는 딸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했습니다. 평소 장애를 가진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내가 만약 아이의 아버지라면 아이와 어떤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쉽게 답할 수 없는 고민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당신의 일상을 보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 보내지 못할 편지를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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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항상 고민하는 삶을 당신은 이미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군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존경했고, 존경스러운 당신을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응원하는 생각과 감정을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사진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에겐 평범할지 모르는 일상이, 저에겐 특별했습니다. 당신에게 보낼 손편지에 사진 한 장을 넣어서 보내볼까 합니다. 사진에는 특별하게 연출된 사진이 아닌, 당신의 일상을 담았습니다. 가족에게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은 비일상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응원한다는 마음이 사진 속에 담겨있기를 바라며, 사진 한 장을 인화하여 당신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뒷모습을 보여준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보내지 못할 편지를 우연히 본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갈 때, 그 사람의 일상을 보는 방식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언제나 바랍니다. 단 한 번이라도,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아버지의 뒷모습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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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remember you from behind

뒤에서 당신을 기억한다는 것

 

 

그랜드투어에 가기 얼마 전, 싸이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공연 중반, 싸이는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영상에는 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스태프의 모습들이 가득했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싸이는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무대를 위해 도움을 주시는 스태프 덕분이라고. 

 

무대에서 계속해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하는 싸이의 모습을 보면서, 사진 스태프로 일하던 많은 순간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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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사진촬영 스태프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활동 중, 제가 해야 하는 일은 항상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는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활동이 끝난 후, 찍은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제 사진은 단 한 장도 제대로 남는 것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거웠지만, 늘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가끔은 속상하고, 힘든 상황도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역할이기에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외딴섬에 홀로 떨어진 듯싶은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태프의 힘듦을 단 한 번이라도 기억하고 생각해준 친구들 덕분에 힘을 받고 일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해준 응원과 걱정이 힘이 됐습니다. 따듯한 한마디가 고마워서, 아직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돈을 받고 일하진 않았지만, 설령 돈을 받고 일을 하더라도, 말 못할 아쉬움은 존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받았던 고마움을 생각하면서, 나 또한 뒤에서 열심히 촬영해주시는 감독님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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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투어를 하며, 청년 영웅을 위해 열심히 작업하시는 카메라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감독님들은 일하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당신이 겪는 어려움을 알아야,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삼각대, 카메라, 노트북 등 많은 짐을 옮겨야 했습니다. 뜨거운 땡볕에서 물 한 모금 제대로 못 마시고 촬영하는 당신의 모습을 봤습니다.

 

심지어 촬영하느라 소매치기당하는 것을 몰랐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당신에게 나는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습니다. 무거워 보이는 당신의 삼각대를 함께 들어주는 것, 버스에서 물을 조금 더 구매하여, 땀을 흘리는 당신에게 옆에서 전해주는 것뿐. 당신에게 진정성 있는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하여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촬영하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당신과 함께 보낸 순간들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뒤에서 당신을 생각했고, 기억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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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이해가 늦습니다. 당신의 사진, 영상 작업이 얼마나 힘들지. 컴퓨터 앞에 앉아 헤아려볼 뿐입니다.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될까요. 만약, 당신의 입장에서 일을 함께 했더라면, 당신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랜드투어가 끝나고, 당신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했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 고마움 받기만 했지, 드리지 못하여

정성스럽게 찍은 필름사진 몇 장을 당신에게 건네는 것으로. 그 고마움 표현해보려 합니다.

 

 

다음, 누군가가 그랜드투어에 가더라도, 당신의 어려움 한 번이라도 살펴볼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겨보려 합니다. 올해의 여름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당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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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If I can leave a long journey

긴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누군가의 마음가짐이 다른 이에게 타고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거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의 마음가짐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표현이 서투른 탓에, 그들에게 받았던 배려와 감사를 모두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던 모습을 반성하며, 감사함을 글을 통해 남겨보려 합니다.

 

 

 

매일 아는 이름이 늘어나고,
알고 있던 이름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우리는 그중
어떤 이름을 기억하게 될까.

 

박선아, 어떤 이름에게 

 

 

 

 

여행이 끝나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저는 훗날 어떤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흐름에도 엔히크, 그리고 청년영웅. 저에게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당신에게 받은 철 지난 다이어리와 열쇠, 엽서, 펜과 꽃다발. 초콜릿과 와인. 내가 생각난다고 줬던 책. 그리고 함께 챙겨준 케이크. 당신에게 받은 고마움을 기억하며, 당신의 이름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글을 작성하며, 나를 만나서 고마웠다는 당신에게 제대로 인사 한 번 못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후회했습니다.

잊지 못할 응원의 한마디와 축하의 향연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공항에서 헤어지던 그 순간. 몇 번을 뒤돌아 당신의 뒷모습을 지켜봤는지. 당신도 그랬을까요. 조금 더 배려해주지 못한 마음에. 만약 우리가 긴 여행을 다시 갈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배려를 충분히 많이 해보려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글이, 글을 읽는 당신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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