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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2024년 상반기 - 등대가 되었던 사람 들어가며 평생을 미련하게 살아온 당신을 생각합니다.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벽돌을 날랐던 탓인지 당신의 왼쪽 어깨는 주저앉았고, 미화원으로서 거리를 청소하기 위해 긴 시간을 무릎 닳도록 걸은 탓인지 당신은 다리를 절뚝여야 했습니다. 방 안 가득 퍼져 있는 코를 찌르는 당신의 파스향을 맡을 때에도 당신의 고단했던 하루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늦은 저녁 당신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집 근처 벤치에 앉아있다는 간단한 상황만을 공유한 채 당신은 전화를 끊었습니다. 설마 하는 생각에 벤치 앞에 갔을 땐, 길을 걷다가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걷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움 없이는 걷지 못하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자 손을 건넸습니다. 당신의 손을..
[일기장]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자신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서라도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그 고결하고 숭고한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작게나마 용돈을 모으기 위해 새벽이면 항상 당신과 택배 상하차 일을 하곤 했다. 장마철의 영향 때문에 비가 퍼부어서 바지는 모두 젖은 상황에서도 트레일러에 있는 택배 상자를 모두 옮긴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약속된 택배 상자를 다 옮기고 집에 가는 길, 당신은 문득 입대를 해야겠다고 내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당신의 선언에 왜 그런 결정을 했냐고 당신에게 물었다. 그러자 당신은 조금이라도 빨리 제대해서 돈을 벌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그렇게 당신은 첫 휴가를 나왔다. 고기를 먹고 싶다는 당신의 연락에 동네 작..
[일기장] 어른이 된다면 드라마 속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어른이 된다면, 누군가의 뒷모습을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했던 그 다짐을 지금도 가끔 떠올리곤 한다.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지만 인생의 롤 모델이었던 당신이 그리울 때면 당신이 나왔던 작품들을 보곤 한다. 입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파스타', '골든 타임'을 보면서 힘을 얻곤 했다. 입시 준비에 바빴지만 당신이 나온 드라마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봤던 드라마 덕분에 대학교 입시에 합격한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한 대학의 입시 구술 면접에 이런 질문이 나온 적이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문구가 나오며, 이런 문구가 뒤에 이어졌다. '당신은 응급실을 지키고 있는 의사이다. 당신 ..
[일기장]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티처스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봤다. 방송에서는 영어 점수가 11점인 학생이 69점으로 향상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방송을 보면서 인생에서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불현듯 떠올랐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반에 들어갔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한다. 중학생 때와는 다르게 반의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책을 꺼내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 친구들은 공부를 왜 할까? 생각했지만 친구들이 공부를 하건 말건, 나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수업은 잘 듣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 매점에 달려가서 빵을 사 먹거나 학교 끝나면 농구를 하거나 게임을 하면서 걱정 없이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간고사를 봤고, 결과는 처참했다. 내 성적을 ..
[일기장]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기억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막차를 타고 집에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친구였다. 낚시를 해서 회를 떠놨으니, 집으로 와서 회에 소주 한 잔 하자고 내게 말했다. 개인적으론 계획에 없는 행동은 잘하지 않기에, 다음 날 중요한 일정이 있다고 둘러대며 친구의 제안을 거절했다. 다시 연락이 왔다. 친구였다. 친구는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매운탕까지 끓여놨다고 했다.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잠시 발길을 친구의 집으로 돌렸다. 친구의 집에 도착했을 땐, 내가 모르는 다른 친구들이 자리에 있었다. 내 친구는 처음 보는 다른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줬다. '열심히 사는 친구이며, 내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고마운 소중한 친구'라고 나를 소개해줬다. 그러고 친구는 내게 소주 한 잔 따라주며 왜 이렇게 ..
[회고] 2023년 하반기 - 미련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 들어가며 언제나 다정하게 가족 옆을 지킨, 환갑이 된 당신을 생각합니다. 당신은 돈을 벌기 위해 왕복 5시간 거리를 출퇴근했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백화점 매대에서 소리 내어 이목을 끌어야 했고, 매대에 물품이 빠질 때면, 창고에서 물품을 꺼내와 채워 넣어야 했습니다.퇴근하고서는 밀린 집안일들을 해야 했고, 잠들기 전에는 파스를 이곳저곳 붙이며,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새벽같이 출근했습니다. 출근 전 당신은 늘 빼놓지 않고, 혼자 있어도 라면 끓여 먹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라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자식이 밥을 굶을까 걱정된 탓인지 당신은 언제나 식탁 위에 반찬들을 올려두고 출근했습니다. 음식이 놓인 식탁 위에는 시간이 갈수록, 반찬 대신 당신이 복용해야 할 약이 늘어만 갑니다..
[회고] 2023년 상반기 - 친절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도록 들어가며 가끔 당신으로부터 옛이야기를 듣습니다. 당신의 자식이 열이 끓어올라 병원에 가야 하는데, 당장 병원비가 없어 이웃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셨다는 이야기. 당신의 자식이 집에 친구들을 데려왔는데, 집이 너무나도 좁아 친구들의 표정이 좋지 못한데도 당신의 자식은 누구보다 밝게 웃고 있었다는 이야기. 누군가 당신의 자식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 '계란프라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까지. 당신은 늘 과거의 이야기를 모두 마무리 지을 때쯤이면, 어렵지만, 바르게 성장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고맙다는 이야기는 당신이 들어야 하는데, 당신은 늘 먼저 고맙다고 이야기합니다. 참 신기하게도, 당신은 아무리 힘들어도 홀로 사는 어르신을 위해 음식을 나누..
[일기장] 작별할 수 있었다면 개발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공부해야 했다.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위해, 친하게 지냈던 이들과 모두 연락을 단절했다. 물론 당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신이 내게 했던 연락 모두 냉정하게 무시했다. 당신의 부고를 접했을 때, 슬픔보단 걱정이 앞섰다.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이 공부만 하던 상황에서 조의금을 어떻게 내야 할까 고민이 먼저 들었다. 수중에 있던 돈을 다 끌어 모아서 조의금을 냈을 때, 적어도 사람 구실은 했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친구 곁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자 그때부터 슬픔이 밀려왔다. 시간이 갈수록 자책감이 들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도 분명 당신 얼굴 한 번은 볼 수 있는 시간은 있었을 것이다. 같잖은 핑계 때문에 소중한 당신을 만나 그..
[회고] 2022년 하반기 - 다정함을 닮을 수 있다면 들어가며 계절에 상관없이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이면 출근했던 당신과 가족을 위해 새벽 기도를 다니는 당신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본 적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합니다. 여전히, 오래, 그리고 소중하게 내 곁에서 나를 응원하는 사람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지만 때론 삶의 풍파에 못 이겨 당신이 시야에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문득 집으로 향하는 길, 사진첩에 손주를 안고 있는 당신의 영상을 우연히 봤습니다. 조카의 울음소리 가득한 영상 속 당신의 얼굴에 있는 주름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시야에 당신을 계속해서 담아둘 수 있도록 모니터 화면에 당신 모습을 걸어뒀습니다. 당신의 다정함을 조금이라도 닮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정한 사람이 되어 나의 도전을 응원하는 사람에게 보답하는 삶, ..
[일기장] 투박하지만 낭만적인 들어가며 생일이 되면 어머니는 늘 94년 여름을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94년은 최악의 폭염이라고 불릴 만큼 더웠던 해였는데, 거짓말처럼 제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고 했습니다. 2022년의 여름도 94년과 비슷했습니다. 27일이 지나면서 거짓말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덕분에 잊고 지냈던 당신과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당신과의 함께한 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투박하지만 낭만적인 당신은 낭만적인 사람이었습니다. 8월 27일이 모두 지나갔을 때쯤이었을까요. 당신은 제게 집인 거 다 알고 있다며 빨리 나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편한 차림으로 나가니, 너를 위해 케이크를 준비했다며 케이크를 술 먹으면서 같이 먹자고 이야기했습니다. 개강을 앞두고 바쁘다고 이야기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