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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작별할 수 있었다면

 
 
 
 
 
 

 

 

 

개발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공부해야 했다.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위해, 친하게 지냈던 이들과 모두 연락을 단절했다. 물론 당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신이 내게 했던 연락 모두 냉정하게 무시했다.

 

 

 

 

 

당신의 부고를 접했을 때, 슬픔보단 걱정이 앞섰다.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이 공부만 하던 상황에서 조의금을 어떻게 내야 할까 고민이 먼저 들었다. 수중에 있던 돈을 다 끌어 모아서 조의금을 냈을 때, 적어도 사람 구실은 했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친구 곁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자 그때부터 슬픔이 밀려왔다. 

 

 

 

 

 

시간이 갈수록 자책감이 들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도 분명 당신 얼굴 한 번은 볼 수 있는 시간은 있었을 것이다. 같잖은 핑계 때문에 소중한 당신을 만나 그동안 나와 함께 해서 고마웠다고, 친절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심지어 당신 마지막 가는 길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돈 걱정부터 해야 했으니. 처음으로 개발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왔던 모든 순간들을 부정했다.

 

 

 

 

 

이별이 서로 갈리어 떨어짐이라는 뜻이라면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을 의미한다.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 한 번 제대로 못했으니, 우린 작별이 아닌 이별을 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당신을 보내고, 이제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소중한 사람에게 그동안 나와 함께 해서 고마웠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제는 다행스럽게도 한 서비스의 백엔드를 책임지는 개발자가 됐다. 돈을 벌게 된다면, 당신에게 좋은 술 한 잔 사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무심하게도 당신의 생일에 술보단 꽃을 들고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살아생전 당신에게 술 대신 꽃을 줬다면 참 정색하고 한 마디 했을 터인데. 그 모습이 문득 생각나 웃으며 당신을 찾아갔다. 

 

 

 

 

 

 

 

 

 

 

 

당신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당신에게 향하는 길. 우연히 도깨비 OST로 유명한 에이프릴 세컨드의 And I'm here이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오늘도 당신 앞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집에 가는 길에 And I'm here 노래를 들었다가 문득 이 노래의 멜로디가 아닌 가사가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And I'm here just just like i used to be

(나는 이곳에 있어, 꼭 예전처럼)

 

We were here in old days with you with me

(우리는 여기에 있었어, 오래전에 너와 함께 나와 함께)

 

When you feel so lonely I'll be here to shelter you

(네가 외롭다 느낄 때 여기서 내가 너의 쉴 곳이 되어 줄 거야)

 

 

 

 

 

 

조금은 이기적 이게도, 내가 당신을 찾아갈 때마다 당신이 내게 노래의 가사처럼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여러 기적 중, 단 5분 만이라도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적도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 기적이 내게 찾아온다면 그땐 내가 당신의 쉴 곳이 되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초라한 내 인생에, 짧았던 당신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건네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조금은 여유가 있을 때 당신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비록 당신에게는 내가 받은 고마움을 전하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소중한 사람에게 내가 받은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신이 베푼 사랑이 뒤늦게 사랑인 줄 알았기에, 참회하며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다정함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일 축하해. 하늘에 있는 나의 친구 진호야. 언젠가 또, 친구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