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저녁이면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해 밖을 향한다. 작은 다세대 주택이 모인 곳이라 3분 정도 걸으면 공용으로 사용하는 분리수거장이 나온다. 그곳에 가면 모기가 들끓는 곳에 허름한 의자에 앉아 있는 80대로 보이는 할머니와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아들이 어느 정도 쌓인 폐지를 리어카에 정리해서 고물상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하루는 집 정리를 위해 족히 책 몇백 권을 버려야 하는 일이 있었다. 분리수거장에 큰 책들을 가져가니 어르신은 고생이 많다고,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으라며 주머니 속에서 꼬깃 접혀있는 만 원짜리 지폐를 건넸다. 그 돈을 어찌 받을 수 있겠나 싶어 정중히 거절하고 집으로 항하는 길, 뒤를 돌아 리어카에 내다 놓은 책을 담아 할머니와 아들이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신에게 이르는 길은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번 봄, 부산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는데 여유가 있어서 평소 가보고 싶었던 아미동의 최민식 갤러리에 들렀다.
사진 찍는 것을 취미로 갖고 있다고 가끔은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는데, 작가님의 사진을 보면서 그동안 나는 사진을 왜 찍어왔는가 부끄러움의 감정이 들었다. 작가님의 사진에는 그 시절 평범한 민중들의 삶이 보였지만, 연출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있는 그대로의 삶에도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환하게 웃는 사진만이 희망을 말하는 사진이라 생각했으나,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숨 쉬고 있는 평범한 누군가의 삶을 담아냈다는 것 또한 희망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해만 뜬다고 희망은 아닌 것처럼. 어두움 속에서 내일을 꿈꾸는 것도 희망이기 때문에.
간혹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욕심만 가득한 생각이 들 때면 적어도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선한 목적을 갖고 일하며 작게나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지라는 마음만큼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언젠간 희망을 전하리라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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